재활병원으로 옮기고 난 후 아버지의 재활치료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대학병원에 있을 때는 하루에 한시간 정도 했다. 30분씩 2타임이었거든. 하지만 여기 와서는 하루에 3~4시간으로 늘어난 것이 아주 좋았다. 아버지도 활동량이 많아지니 표정이 밝아졌다. 나 역시도 기분이 좋았다. 운동은 어떤 것을 했느냐면 침대에 다리를 고정시키고 서는 운동은 고정적으로 30분 하게 됐다. 그리고 워커라고 불리는 보행기를 팔로 지탱하여 아버지가 밀고 다니면서 걷는 운동을 하는 것이었다. 사이클 타는 것도 있었는데, 아버지에게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상반신은 멀쩡하니 허리를 곧추 세우고, 버티고 있으면 내가 사이클 발에 아버지 발을 끼워서 아버지가 스스로 다리를 움직이는 운동이었다. 뭐든 처음에는 쉬운 것이 하나도..
대학병원에 입원한지 6개월이 다 됐을 무렵, 병원에서 퇴원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병원 측 말로는 이렇게 지낸 것도 오래 버틴 것이라고 했다. 걱정이 앞섰다. 아버지는 이 상태로 퇴원을 하게 되면 집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말이다. 간병인 말을 들어보니 아버지는 재활병원으로 전원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재활병원에 전화를 돌리면서 전원이 가능한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집에서 가까우며 시설이 괜찮고 명망좋은 병원을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리뷰를 봤을 때, 사람들이 좋은 말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의심병이 돋아서 쉽사리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선택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제일 괜찮아 보이는 재활병원을 선택했고, 거기서 사람을 보내줄테니 상담해보라..
병실에서 아버지를 돌보며 간병생활을 하던 나는 1개월 쯤 되었을 무렵 많이 지쳐있었다. 병원 생활은 녹록치 않았고, 간병인이 왜 있는지 알 것 같았다. 회사에서 배려를 해줘서 1개월은 무급휴가식으로 간병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간병인을 구해야 할지 어떨지 말이다. 간병인을 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간병인 센터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디 병원에 몇 호실에 누구인데 간병인을 써야 할 것 같다. 라고 말하면 몇 날 몇일에 간병인을 보내줄테니 잘 만나 보라고 이야기 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면 다행이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있었는데, 간병인을 부르는데 사용되는 비용이었다. 간병비는 병원 생활을 할 때, 지대한 영향을 차지한다. 누군가 이 글을 읽게..
욕창 치료를 통해 우연인지 행운인지 아버지의 오른쪽 종아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아버지의 척수경색 등급은 ASIA-A 등급이라고 해서 변화의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반신반의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좋은 결과가 생겨나니 기분이 좋아 아버지를 부여잡고 덩실 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재활치료도 이에 맞춰서 변경이 됐는데, 아버지의 오른쪽 종아리의 움직임을 늘리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정확히 말하면 무릎을 움직이는 운동이 늘었다고 해야 했다. 무릎을 접었다 폈다 하는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이 사소한 행동이 아버지에게는 재활이라는 명목에 운동으로 다가왔다. 무릎의 움직임을 체크했을 때, 1 ~ 10점까지 점수를 매길 수 있다면 아버지는 3점 정도 수준에 경미한 수준으로 무릎의 감..
어느덧 아버지의 병원 생활이 2개월 ~ 3개월이 됐을 무렵 아버지에게 작은 변화가 찾아왔다.아버지의 오른쪽 종아리 쪽이 검붉게 변해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이 단순히 어디 부딪혀 생긴 멍인가 싶었다.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이건 욕창이라고 했다. 욕창이 무엇일까? 욕창이란 신경 마비 환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질병인데, 살이 압력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면 그 주변 피부가 괴사하면서 살이 파여들어가는 아주 무서운 병이었다. 일반인들도 같은 자세로 오래 앉아 있으면 소위 말하는 배긴다라는 표현을 이 때 쓰는데, 이 느낌을 받으면 자세를 바꿔주던지 일어서던지 하면 해결이 된다. 하지만 마비 환자들은 감각이 없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자세로 유지를 하게 되다보니 살은 비명을 지르는데, 그걸 느낄 수 ..